티스토리 뷰

방아깨비놀이 정의, 내용, 특징 및 의의

정의

풀밭에서 방아깨비를 잡아 두 발을 쥐고 위아래로 뛰는 모습을 보고 즐기는 놀이.

내용

호기심 많은 아이들에게 움직이는 곤충은 좋은 놀잇감이다.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진 곤충을 잡아 여러 노래를 부르며 가지고 놀았다. 김소운이 1933년 발행한 『조선구전민요집』에는 나비·잠자리·개똥벌레·거미·달팽이·딱정벌레·땅강아지 등 여러 곤충에 관한 노래가 채록되었다. 유난히 큰 방아깨비는 아이들 눈에 띄는 대로 잡혀 놀잇감이 된 것은 당연하다. 방아깨비는 메뚜기의 일종으로 수컷보다 암컷이 더 크고 뒷다리가 튼튼하다. 충남 청양이나 논산에서는 땅개비라고도 하는데 뒷다리를 잡으면 마치 디딜방아처럼 위아래로 뛴다. 이 모습이 마치 방아 찧는 것 같아 노래를 부르며 이를 보고 즐긴다. 혼자서도 하지만 여러 아이가 함께 누구의 것이 오래 찧는지 겨루기도 한다. 들판에 놀러 갔다가 또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심심풀이로도 한다.

방아깨비가 마치 노래에 박자를 맞추듯이 뛰어 지방마다 다양한 노래가 전해지는데 대표적인 것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아침 방아 찧어라/ 저녁 방아 찧어라/ 콩콩 찧어라(여러 지역 공통)

땅개비야 땅개비야 아침거리 찧어라 저녁거리 찧어라
우리 아씨 흰 떡방아 네가 대신 찧어라
앞집 처녀 보리방아 네가 대신 찧어라

  • 충청남도, 경기도

앞집 방아 딸깍딸깍/ 뒷집 방아 딸깍딸깍
찧어 내니 쌀이요/ 하여 내니 밥이요
먹고 나니 잠이요/ 누고 나니 똥이요

  • 함경북도

춤춰라/ 춤춰라/ 하늘에/ 있는/ 어미한테/ 데려다 주마
춤추라/ 춤추라/ 너네/ 어멍신디/ 보내 줄게

  • 제주도

여름철이 끝나는 초가을에 아이들이 강아지풀대에 방아깨비를 잡아 꿰어 화롯불이나 겨불에 구워 먹기도 했다. 방아깨비를 구우면 색이 빨갛게 되는데 날개와 다리를 떼고 몸통만 먹는다. 주전부리가 마땅치 않은 예전의 일이다.

특징 및 의의

예전 아이들은 메뚜기는 구워 먹고, 잠자리는 꼬리를 잘라 밀대를 꽂아 시집보내고, 풍뎅이는 목을 비튼 다음 거꾸로 뒤집어 놓고 마당 쓴다고 좋아라 했다. 한편으로 생명을 경시한다고 나무랄 것이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아이들 장난으로 가볍게 넘기기도 할 것이다. 지금은 이런 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별로 없지만 예전에는 위와 같은 놀이가 일상이었다. 요즘 살충제 남용으로 반딧불이가 사라진 것과 옛 어른들이 곡식을 좀먹는 벌레를 없애 달라고 지냈던 제사[蟲祭]에서 ‘종자는 죽이지 말아 달라’라고 한 기원했던 것을 비교하면 후자가 더 설득력 있는 것 같다.

 

 

부여 유왕산놀이 정의, 내용, 특징 및 의의

정의

음력 8월 17일에 충청남도 부여 양화면 암수리 유왕산 인근 금강가에서 행하는 놀이.

내용

유왕산留王山놀이는 일종의 추모제로, 매년 음력 8월 17일에 충남 부여 양화면 암수리 유왕산에 전승되고 있다. 이 놀이 공간은 백제의 멸망과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으며, 후대에 여성들의 반보기 공간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서기 660년에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이 사비성을 공격하자 의자왕은 웅진으로 피신했다가 사비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해 7월 18일에 항복을 한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은 사비성을 함락시키고, 9월 3일에 의자왕과 태자 및 세 왕자, 대신 88명과 백성 12,807명을 당나라로 끌고 간다. 소정방 일행이 왕을 비롯한 대규모 포로를 끌고 약 40여 일 만에 급히 당나라로 돌아간 것은 백제 부흥 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각지에서 일어나는 백제 부흥 운동을 조기에 진압하려는 전술적 판단에 의한 것이다.

부여 유왕산 인근 가야구의 구전에 의하면, 소정방은 가족 친지간에 이별의 회포를 풀기 위해 의자왕 일행을 8월 10일부터 일주일간 이곳에서 머무르게 했다. 그래서 왕 일행이 머물렀다는 뜻에서 이곳의 지명이 ‘유왕산留王山’이 되었다고 한다. 한편 백제 부흥군이 당나라 군대를 향해 활을 쏘았다고 하여 유왕산을 사당산射唐山이라고도 부른다.

금강 하구의 충남 서천 남산도 대규모 선단이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몰려든 유민들의 생이별 장소가 되었다. 이곳은 유민들이 의자왕 일행이 탄 대규모 선단을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남산에 모여 눈물로 떠나보냈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렇게 남산은 이산의 슬픔을 안고, 이산 시기에 맞춰 재회를 기약하고, 그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추모 장소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대규모 이산의 아픔을 안은 이별의 장소가 후대에 대규모 부녀자들의 반보기 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서천의 남산이나 부여 유왕산은 이런 전설을 안고 20세기 중반까지 8월 17일에 대규모 반보기 행사가 이루어졌다. 혼인을 한 부녀자들은 매년 음력 8월 17일에 유왕산과 남산에 모여, 친척과 친지들을 반갑게 만나 음식을 나누어 먹고 놀이를 하면서 회포를 풀었다. 인근에서 모여든 인파로 작은 산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이때 각종 장사치들이 모여들어 난장이 형성되었다.

상봉은 장터 주위의 숲이나 공터, 바위 위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친정 식구나 친지 등을 만나, 곳곳에 무리를 지어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부에서는 동네의 젊은 여자 10여 명이 빙 둘러앉아서 손을 맞잡고 빙빙 돌면서 <강강술레야>를 부르거나, 서로 달리기 시합을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여러 장사치가 모여드는데, 한때 남성들의 출입을 차단하기도 했다.

반보기는 아침에 출발해서 반나절 동안 만나고 오후에 되돌아가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이런 풍습은 금강을 중심으로 충남 남부 지역과 전북 북부 지역에 널리 전승되었다. 유왕산에서 행해지던 반보기는 1948년에 좌익의 준동을 막기 위해 금지되었다가, 6·25전쟁 이후에 전승이 완전 중단되었다.

따라서 부여의 유왕산과 서천의 남산은 백제 멸망에 따른 대규모 이산의 장소가 후대에 재회 기원의 장소로, 그리고 근대에 와서는 시집을 간 부녀자들이 친정 식구와 친구를 만나는 반보기 장소로 변이되어 갔다. 반보기 때에는 부여 유왕산이나 서천 남산은 부녀자 중심으로 수천 명이 모이는 대규모 만남의 광장이 형성되며, 각종 장사치와 부녀자들 중심의 놀이가 형성되었다.

부여의 유왕산추모제는 백제 멸망의 역사적 배경과 반보기의 세시풍속을 바탕으로 하여 1997년 음력 8월 16∼17일에 향토 축제로 재현되었다. 주로 추모제의 성격을 지닌 행사로서 포로가 된 의자왕 일행이 탄 대규모 선단이 유왕산을 통과하면 강가의 유민들이 상여를 메고 이산의 아픔을 노래와 통곡으로 재현한다. 이때 백제의 노래인 <산유화가山有花歌>를 부른다. 그리고 유교식 제사, 원혼을 달래는 망자 천도굿도 함께 이루어진다. ‘그리움의 꽃 유왕산놀이’라는 축제의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유왕산추모제는 이산의 아픔에서 출발한 의식이지만, 반보기의 전통성을 바탕으로 만남의 즐거움으로 승화된 축제라고 볼 수 있다.

특징 및 의의

유왕산놀이는 유왕산이라는 지명 유래와 백제의 멸망 및 의자왕 일행의 체류와 관련된 전설이 근원 설화를 이룬다. 후대에 부녀자 중심의 반보기 세시풍속과 여성의 집단 놀이 형태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따라서 역사적 이산과 재회 기원의 장소가 출가한 여성의 재회의 공간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추모의 장소로 재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청양 범놀이 정의, 내용, 특징 및 의의

정의

충청남도 청양의 도림리 마제마을에서 정월대보름에 막대, 맷방석, 짚으로 범의 형상을 만들어 뒤집어쓰고 각 가정을 돌며, 잡귀를 쫓는 세시놀이.

내용

이 놀이의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연행자들은 매우 오래 전부터 전해왔다고 말한다. 이 놀이는 도림리 마제 마을에서 전해 왔기 때문에 ‘마제범놀이’라고도 한다.

도림리 마제마을에서는 해마다 정월대보름이 되기 3∼4일 전쯤 이 놀이를 시작하여 정월 14일 밤까지 지속된다. 각 가정에서는 범이 자기 집을 방문해 주기를 기다린다. 다만 정월대보름은 조용히 보내는 날로 여겼기 때문에 이날은 범놀이를 하지 않았다.

한편 『내고장 청양』 조사 자료에는 산신령의 사자인 호랑이를 마을에 보내어 집집마다 방문케 해서 마을에 재난이 없어지고 풍년이 들도록 하는 놀이로 기록되어 있다.

호랑이(범)를 만드는 방법은, 우선 한 발 정도 되는 긴 지게 작대기 두 개를 묶어서 두 개의 발을 만든다. 그리고 두 명의 남자가 작대기를 다리 사이에 끼고 허리를 구부린다. 이때 호랑이 속에 들어가는 사람으로 힘이 좋은 장정을 고르는데, 그 이유는 2∼3일간 허리를 구부리고 온 동네를 돌며 많은 힘을 쏟기 때문이다. 구부린 장 정의 등 위로 멍석이나 맷방석을 뒤집어씌우고, 그 위에 흰색과 검은색의 헝겊을 찢어 흑백 무늬를 붙여서 호랑이 등 모양을 낸다. 그 다음에 묵은 짚과 헝겊을 뭉쳐서 호랑이의 얼굴 형태를 만들고 창호지를 뒤집어씌워 눈을 그려 넣는다. 여기서 호랑이 눈이나 무늬 등의 문양은 짚을 태운 재를 먹과 같이 갈아서 만든 물감을 사용한다. 짚과 헝겊으로 엉덩이 쪽에 꼬리도 만들어 끼우는데,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한다. 완성된 호랑이는 실제 호랑이와 유사하여 무서운 모습이다.

행렬의 순서를 보면 호장이 가장 앞에 서고, 그 다음으로 범이 선다. 그 뒤로는 풍물을 치는 사람들이 뒤따르고, 마지막으로는 마을 사람들이 구경꾼으로 뒤따른다. 풍물을 치는 악기재비들은 깽맥이(쇠) 두 명, 북·장구·징 각각 한 명으로 구성한다.

범놀이를 관장하는 사람을 ‘호장’이라고 하는데 놀이를 이끄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호장이 “입을 벌려라.”라고 호령하면 범은 그대로 지시에 따른다. 호장은 일행을 이끌고 주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말주변이 뛰어난 사람으로 선정한다. 완성된 호랑이를 앞세우고 호장의 지시에 따라 풍물을 울리며 집집마다 방문한다. 범놀이패가 오면 집주인은 문을 활짝 열어 놓고 환대한다. 대문 앞에서 호장이 “산신령 문안이오.” 하면 주인이 나와 영접한다. 호랑이가 머리를 흔들며 인사를 하면 주인은 머리를 숙여 답례한다. 도착한 범놀이패는 마당을 한 바퀴 돌고 제당 앞에서 고사를 지낸다. 마당에는 멍석을 깔고 상을 편 다음 쌀 한 말을 사발에 놓고 가운데 초 하나를 꽂는다. 그리고 정화수를 한 그릇 받아 놓는다. 상 위의 제물은 모두 범놀이를 주도하는 사람이 갖게 되며, 돈은 주고받는 일이 거의 없었다.

마당에서 고사를 지낸 다음에 풍물을 치며, 그 집의 뒤꼍으로 이동해서 장광제를 지낸다. 장광(장독대)에서 호랑이가 앞발을 들고 머리를 끄덕이면, 뒤따라온 풍물패가 장광을 빙빙 돌면서 악기를 친다. 호장은 “이 집의 운수대통을 빕니다.”라고 하면서 장광제를 지낸다. 다음에 풍물을 치며 부엌에 들어가서 소도방(솥뚜껑)을 열어 놓고 조왕신을 위한 고사를 지낸다. 이렇게 놀다가 점심때쯤이 되면 밥을 얻어먹기 위하여 마을에서 부유한 집을 방문한다. 자연스럽게 마을 잔치 분위기가 조성되며, 이때 마을 사람들은 풍물에 따라 다 같이 어울려 흥겹게 춤을 추며 논다. 그리고 간단한 음식과 술을 그 자리에서 먹은 다음에 좋은 음식은 따로 담아서 다음 집으로 옮긴다. 중간에 샘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샘제(우물제)를 지니며, 이때 샘물 속에 흑백의 줄을 잘라서 넣어 준다. 범제가 끝나면 마을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여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면 한바탕 흥겹게 논다. 범은 앞발과 뒷발을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하면서 흥겹게 춤을 추고, 마을 사람들도 같이 춤을 추며 밤늦게까지 논다.

각 가구를 도는 순서는 마을의 서쪽에서부터 시작하여 동쪽으로 도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경우에 따라 마을의 위쪽부터 아래쪽으로 내려가기도 한다. 한편 범을 만든 집에서 가장 먼저 범놀이를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놀이가 끝나면 범을 모두 해체한다. 지게 작대기는 주인이 도로 가져가고, 짚은 흔치 않았기 때문에 별도로 챙겼다. 범놀이를 할 때에는 집집마다 빠짐없이 방문하는데, 만약 빠지는 집이 있으면 그 집안에 액운이 따른다고 여겼다. 따라서 마을의 모든 집을 방문하기 때문에 이 놀이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범놀이는 한 해라도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난다고 하여 해마다 지속되었다. 그러나 6·25전쟁을 전후로 하여 인구가 급격히 줄면서 점차 약화되다가 대략 1970년 초에 소멸되었다.

특징 및 의의

범놀이는 순수한 벽사진경의 놀이로서 호랑이는 산신령으로 등장하며, 마을을 보호하는 수호신의 성격을 지닌다. 놀이 방법은 함경도 북청을 중심으로 정월대보름에 행하는 사자놀이와 유사하며, 형태는 경기도 남부에서 팔월대보름에 행하는 거북놀이와도 유사점이 있다. 다만 놀이 방법은 전국적 분포를 보이는 정초의 지신밟기와 유사하게 진행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