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뼉치기 정의, 내용, 특징 및 의의
정의
서로 마주보거나 여럿이 원을 만들고서 자신의 손바닥으로 상대방 손바닥을 치거나 몸동작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진행하는 놀이.
내용
손뼉치기의 단순한 형식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불분명하지만 다양한 동작이 따르는 놀이 형식이 잘 발달되었다. 손뼉치기 형식과 부르는 노래가 일본의 와라베우타[童歌](놀이와 함께 부르는 아이들의 유희요)와 대부분 유사해서 근대기 이후에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유행된 놀이로 추정된다.
놀이 형태는 순수하게 손뼉치기만을 즐기는 경우 및 가사에 맞게 여러 동작과 같이 진행하는 것이 있는데, 두 명 이상이 혹은 많은 사람이 호흡을 맞추면서 진행한다.
놀이 유형은 순수한 손뼉치기를 하는 기본형, 가위바위보와의 결합형, 다른 놀이 동작과 같이 하는 연희형 등이 있다.
놀이의 기본형이라 할 수 있는 손뼉치기는 시작할 때 둘인 경우는 서로 마주 보고, 많은 인원인 경우는 원을 둘러서서 양손을 잡고 손을 흔드는 ‘셋셋셋’으로 시작한다. 이어 서로가 위로 향한 왼손바닥으로 상대방의 오른손바닥을 치고, 오른손바닥으로 왼손바닥을 치면서 동작을 번갈아 하는 형태, 손끝을 위로 한 채 손등을 대면서 치기, 손바닥에 손가락을 얹기 등 일반적인 형태가 있다. 놀이의 종결에는 ‘구리구리’라고 노래하면서 양손을 돌려서 말고, 계속해서 서로 왼손을 위로 들어 아치 모양을 만든 후 그 밑에서 ‘가위바위보’로 승부를 낸다.
노래와 함께 놀이를 진행할 때 하는 동작은 동일하다. 노래 내용에 따른 연희를 행하는 가사와 동작은 거의 고정되어 있으며, 노래는 놀이를 더욱 흥겹게 한다. 예를 들면 ‘아침 바람 찬 바람에’로 시작하는 유희요는 손뼉치기를 하면서 연희가 진행되는 대표적인 것이다. 서로가 마주 서서 자신의 왼 손바닥을 먼저 치고, 상대의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 친 다음 ‘울고 가는’에서는 우는 모습, ‘저 기러기’는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키고, ‘우리 선생 계실 적에 엽서 한 장 써주세요’에서는 오른 손가락으로 왼 손바닥을 찧고, ‘한 장 말고 두 장이요’는 손가락으로 숫자를 나타내면서 열 장까지 반복한 후 ‘가위바위보’로 마무리한다. 이긴 사람이 손가락을 정해서 진 사람의 목덜미를 찍는데, 감각만으로 찍은 손가락을 알아맞히면 다시 처음부터 놀이를 시작한다. 손뼉치기에서 부르는 유희요는 놀이 진행상 정확한 동작이 제시되는데 특히 ‘빨래하기’, ‘옷 개기’, ‘음식 먹기’ 시늉 등의 동작이 노래에 더해진다.
특징 및 의의
손뼉치기는 ‘손’을 통해 신체 접촉이 이루어져서 놀이하는 상대와 친근감이 조성된다. 자라는 아이들의 인성과 이기고 지는 승패 의식보다는 진 사람을 보듬고, 상대를 존중하는 사고를 키울 수 있는 놀이이며, 개인주의가 강한 현대사회에서 사람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담은 놀이라는 데에 그 특징이 있다.
판수놀이 정의, 개관, 내용, 특징 및 의의
정의
눈을 가린 술래가 다른 사람을 잡거나 이름을 불러서 맞히는 아이들 놀이.
개관
판수놀이에 대한 역사적인 모습은 최영년崔永年(1856∼1935)이 지은 『해동죽지海東竹枝』에 잘 나타나 있다. 이에 따르면 “옛날 풍속에 아이들이 한 사람의 눈을 가리고 여럿이 그 주위를 빙빙 돈다. 이때 어렵게 장님이 한 사람을 붙잡으면 이기게 되는데, 이를 ‘까막잡기掩目戲’라고 한다. 아이들의 놀이가 도리어 경계가 되는 것이 많다. 장님의 눈이 투명하지 못함을 웃으며 본다. 어쩌다 장님 손에 들어가기만 하면, 눈 뜬 사람이 눈 감은 사람만도 못하다.”라고 하여 판수놀이를 다소 희화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로써 판수놀이는 조선시대 이래 민간에서 널리 전승되어온 전래 놀이였음을 알 수 있다.
판수놀이는 전승지 역에 따라 ‘봉사놀이’, ‘봉사잡기’, ‘장님놀이’, ‘까막잡기’, ‘소경놀이’ 등으로 불린다. 본래 판수는 점을 업으로 삼는 소경을 일컫는다. 성현成俔의 『용재총화慵齋叢話』에는 “장님 점쟁이로서 삭발한 사람을 세상에서 선사禪師라 하는데, 혹은 판수라는 이름으로 불렀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눈을 가려 앞을 볼 수 없는 술래가 마치 판수처럼 어색하게 행동하는 까닭에 다양한 이칭으로 불린다. 즉 여기에서 술래는 단순한 소경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름을 알아맞히고 점을 치는 판수와 비슷한 역할을 하므로 판수놀이, 소경놀이, 봉사잡기, 장님놀이라 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사된 『조선의 향토오락朝鮮の鄕土娛樂』에는 맹목유盲目遊·맹유盲遊·맹귀유盲鬼遊 등의 기록이 보이는데, 이는 판수놀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내용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는 판수놀이는 달 밝은 밤에 넓은 마당이나 공터에서 행해졌던 놀이이다. 주로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전승되었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남녀가 함께 어울려 놀이를 하기거나 더러는 청장년층에서 행하기도 했다. 놀이의 방법은 먼저 가위바위보를 해서 술래를 정한다. 그런 다음 술래로 뽑힌 아이가 판수가 되어 앞이 보이지 않도록 수건이나 끈으로 눈을 가린다. 판수놀이는 각 지역별로 다소의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다음의 몇 가지 방법이 전승된다.
- 술래가 정해지면 나머지 아이들은 술래 주위를 에워싸고 여기저기서 손뼉을 치며 판수에게 위치를 알린다. 술래는 박수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장님처럼 손발을 내저으며 쫓아다니고, 아이들은 술래에게 잡히지 않기 위하여 손뼉을 치며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그러다가 술래에게 잡힌 아이는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 이때 다른 아이들은 술래에게 잡은 아이가 누군지 묻고, 술래는 손으로 그 아이의 얼굴이나 몸매, 옷 등을 더듬어서 이름을 부른다. 술래가 아이의 이름을 맞히면 잡힌 아이가 술래가 되지만 틀리면 다시 판수가 되어 놀이를 진행한다.
- 아이들은 술래를 빙 둘러싸고 앉아서 원을 그리며 좌우로 돌다가 한 아이가 원 밖으로 나간다. 그러면 술래는 “누가누가 보인다.”라고 상대를 지목하면, 아이들은 “누가누가 보이냐?”라고 묻는다. 이때 판수가 원 밖에 있는 아이의 이름을 맞히면, 아이들이 일제히 “누구 뒤에 숨었냐?”라고 또 묻는다. 술래가 맞히면 “맞었다 맞었다.”라고 제창하고, 틀리면 “틀렸다 틀렸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술래는 연거푸 두 번이나 원 밖으로 나간 아이의 이름을 맞혀야 하는 까닭에 좀처럼 판수를 면하기가 쉽지 않다. 술래가 상대의 이름을 맞히면 역할을 바꾸게 된다.
- 편을 짜서 고양이와 쥐를 정한 다음 술래인 고양이가 쥐를 잡는 놀이이다. 아이들은 가위바위보를 해서 두 패로 편을 나눈다. 양편은 번갈아 끼어들며 원을 그리면서 앉는다. 그리고 양쪽 진영에서 행동이 민첩하고 영리한 아이를 각각 한 명씩 뽑아 고양이와 쥐가 된다. 놀이가 시작되면 고양이는 술래가 되어 두 눈을 수건으로 가린 채 쥐를 잡으러 쫓아다니고, 쥐는 손뼉을 치면서 고양이를 약을 올리며 이리저리 도망을 다닌다. 단 쥐는 아이들이 앉아 있는 원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규정이 적용되며, 만일 다급해진 쥐가 이를 어기거나 고양이에게 잡히면 두 편이 서로 역할을 바꾸어서 놀이를 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놀이를 해서 어느 편이 쥐를 많이 잡았느냐에 따라 승부가 결정된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북한에서는 술래인 범과 토끼를 정한 다음 범이 자신의 등을 찌르고 달아난 토끼가 누구인지 이름을 알아맞히는 놀이가 있는데, 이를 ‘사람찾기’라고 한다.
특징 및 의의
판수놀이는 비단 아이들의 놀이에 국한되지는 않았다. 예전에 두레가 나거나 품앗이를 할 때 여러 사람이 모이면 심심풀이로 이 놀이를 하기도 했다. 즉 술래가 눈을 가리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막대기나 손으로 툭툭 치기도 하고, 약간 짓궂은 농담을 하면서 놀린다. 앞을 볼 수 없는 술래는 다른 사람을 잡으러 가다가 넘어지거나 부딪치게 되는데, 이를 보고 일꾼들은 한바탕 웃으며 잠시 고된 일을 잊고 시름을 달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판수놀이는 장소나 도구에 구애받지 않을 뿐 아니라, 놀이의 참여자가 다함께 여흥을 즐기는 오락성과 해학적인 요소가 강한 놀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의 향토오락 정의, 내용, 특징 및 의의
정의
조선총독부가 조선의 사회생활과 민간신앙 등을 조사하여 간행한 총 47집 시리즈의 한 권으로 전국의 민속놀이를 수집·정리한 자료집.
내용
이 책은 1924년부터 1941년 사이에 간행된 조선총독부 조사 자료 제47집에 해당된다. 조선총독부는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책 수립을 위한 각종 풍속風俗 조사를 시도했다. 총독부의 식민지 문화에 대한 정책은 식민지 주민용 각종 법령 제도를 마련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보다 정교한 통치 제도와 보다 효과적인 통치 요령을 얻어 내려는 조사’를 목표로 이른바 제도 조사와 풍속 조사에 나서게 되었다. 이런 조사 목적에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기 쉽다. 그러나 독자적인 민속놀이 조사를 할 수 없었던 당시에, 일본이 주도한 조사 자료의 가치는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이런 조사 자료의 학문적 가치에 관한 문제는 어느 정도의 논의를 거쳐 비판의 대상을 넘어서 활용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된다.
조선의 계契, 조선의 귀신, 생활 상태 조사, 조선의 무격巫覡, 조선의 풍수, 조선의 점복과 예언, 부락제, 조선의 향토오락 등 일련의 보고 자료는 1923년에 설정한 풍속 조사 항목을 바탕으로 각 분야별로 조사되었다. 실무적인 일은 경성제국대학과 조선총독부 중추원 조선사편수회가 중심이 되어 대부분이 총독부가 촉탁한 인사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이 책의 간행 책임자인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1891∼1968)은 도쿄대학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1920년부터 1941년까지 조선총독부의 문서과 조사 제2계 주임 겸 촉탁으로 민간신앙 조사에 주력해서 『조선의 귀신朝鮮の鬼神』, 『조선의 풍수朝鮮の風水』, 『부락제部落祭』 등을 펴냈다. 그는 부임 초기에 조선의 사회 제도나 사상에 관심을 두었으나, 차츰 구체적인 민간신앙의 현장 조사 자료 작성에 힘을 기울였다. 그의 조사 성과는 조사 자료집으로 간행되었는데, 『조선의 향토오락朝鮮の鄕土娛樂』은 제47집으로 마지막 간행물이 되었다.
이 책의 내용을 이루고 있는 향토오락이란 그 범위가 실로 넓고 다양하다. 오늘날 민속학의 개념으로 볼 때, 향토오락의 내용은 민간신앙, 민속예술, 세시풍속, 구비전승 등에 걸쳐 있는 놀이 전반을 포함하고 있다. 1961년부터 1981년에 걸쳐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이 간행한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에 제시된 민속 조사 항목이나, 1971년에 한국문화인류학회가 제시한 「한국민속자료분류표」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의 내용을 구성하고 있는 놀이들은 「놀이편」 혹은 「오락편」에서만 다룰 수 있는 좁은 의미의 놀이에 한정되지 않는다. 즉 향토오락이라는 범주는 놀이나 오락의 장르를 넘어서 많은 민속 장르와 중복 혹은 관련되어 있다. 예를 들면 별신굿은 오락임과 동시에 민간신앙, 민속예술, 세시풍속, 구비전승 등의 장르와도 관련된다. 따라서 향토오락이란 어린이들의 단순한 유희적 오락은 물론, 세시풍속의 전개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놀이적 요소를 포함하는 행위 전반을 그 영역에 포함시킬 수 있다. 세시풍속일람표에 열거되는 대부분의 세시풍속명은 이 책에 제시된 놀이명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자료에서 향토라는 말은 매우 넓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여기서의 향토란 지리 개념으로 시골이라는 의미보다는, 적어도 궁중을 제외한 폭넓은 백성들의 세계라는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향토는 민간 혹은 민속 사회라는 개념과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향토오락의 향유자들은 농민이나 상인 등의 서민층이 중심을 이루지만, 재야 혹은 재향 양반들도 향토오락의 향유자에 포함되고 있다. 시회詩會, 백일장白日場, 종경도놀이 등도 향토오락의 영역에서 다루어지고 있으며, 호미씻이나 농악 등의 경우에 양반 계층은 후원자가 되어 반상이 함께 즐기는 놀이가 된다.
결국 이 책의 내용을 이루고 있는 향토오락이란 민속놀이의 동의어이기도 하지만, 많은 부분이 세시풍속의 표현 양식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민속무용 민속음악 제례 등과 재향양반들의 파한破閑적인 놀이를 포함한다.
이 책에서는 전국을 13개 도道로 나누어 서울은 경기도에, 제주는 전라남도에 포함시키고 있다. 13개 도는 모두 226개의 지방으로 분류했는데, 이는 당시의 행정구역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 책에 제시된 놀이명의 총 항목 수는 약 6,450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놀이법에 대한 설명이 있는 항목이 약 1,340개, 설명 없이 놀이명만 제시된 항목이 약 5,110개가 된다. 놀이명은 동명同名이 다른 내용인 경우와, 같은 내용에 다른 이름을 붙인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石遊び─돌 놀이’의 실제 내용이 공기인 경우와 비석치기인 경우가 있고, ‘取り─잡기’라는 단어는 땅재먹기·주인잡기·진치기 등에 두루 대응되고 있었다. ‘강강술래’는 일본어로 번역하는 사람에 따라 ‘水越來遊び·強羌水越來·水越來·水越遊び·手つなぎ踊り·越來遊び·手つなぎ廻り·水越來踊り’ 등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음차만 하는 경우, 놀이 방법에 일본어로 번역하는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는 원 자료의 조사자가 자료에 놀이 명칭을 부여하거나 놀이명을 일본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인 경우도 있고, 같은 놀이를 지방에 따라서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 때문에 생기는 다양함 때문인 경우도 있다.
각 지역의 놀이의 기술 순서는 정월에 하는 놀이부터 차례대로 연말의 놀이까지 배치하고, 계절과 상관없이 수시로 하는 놀이는 연말에 이어서 배치하였다. 각각의 놀이는 맨앞에 놀이 명칭을 제시하고, 놀이 하는 시기, 놀이의 주체, 놀이의 방식, 특별한 경우에는 놀이의 유래, 노래나 고전을 인용하기도 하고 그림이나 사진을 넣은 경우도 있다. 현재의 서울인 경성京城 지방의 서두 부분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 윷놀이 | 정월 | 일반: <놀이법> 등과 배가 있는 네 개의 윷가락을 동시에 던진다. 윷가락 하나만 젖혀지면 1점(도), 두 개가 젖혀지면 2점(개), 세 개가 젖혀지면 3점(걸), 전부 젖혀지면 4점(윷), 네 개가 모두 엎어지면 5점(모)로 계산한다. 두 명, 네 명 혹은 여섯 명이 두 편으로 나뉘어 엇바꾸어 가며 윷을 던지며, 가진 말로 말판 위를 달리게 하여 승패를 정한다. <유래> 고려시대부터 전래되어 왔다.
• 널뛰기 | 정월 | 젊은 부녀자: <놀이법> 긴 널판때기의 한 가운데 아래쪽에 짚단 따위를 둘둘 감아서 받쳐 베개로 삼고, 널판때기의 양 끝에 두 사람이 마주 서서 서로 뛰어 오르면서 논다. <유래> 고려시대부터 전래되어 왔다.
• 돈치기 | 정월 | 남아, 일꾼: <놀이법> 땅바닥에 작은 구멍을 파 놓고, 5~6m 떨어진 곳에서 이 구멍을 향해서, 놀이 상대방이 내어놓은 돈을 던져 맞춘다. 혹은 구멍에 돈을 던져 넣거나, 구멍 바깥에 있는 상대방이 정한 물건에 큰 동전이나 둥근 돌을 던져서 맞추면 그 물건을 차지하게 된다. 일종의 승부 겨루기 놀이이다.
특징 및 의의
1920년대 일본은 많은 사람이 모여서 하는 민속놀이를 탄압하였기 때문에 전승이 단절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서도 무라야마 지준이 이 책의 저술을 위해 전국의 향토오락을 수집하던 시기에는 ‘향토오락 보호 조장. 200여 종을 조사·수집하여 지방의 특수성에 적응된 것은 민중의 오락으로 지도·발전시킨다. 씨름, 그네, 널뛰기, 달맞이, 답교, 농악 등은 활성화한다(동아일보 1938년 7월 28일자).’라는 정책을 펼쳤다.
전국의 향토오락을 수록한 이 책은 저자 무라야마 지준이 전국을 답사하여 얻은 부분도 있지만, 총독부가 전국의 초등학교에 행정 명령을 내려 수집한 일종의 설문조사를 정리한 자료집이라 할 수 있다. 조선의 놀이를 일본어 문서로 번역·기록하는 과정에 명칭이나 놀이 방법에 오류가 나타나기도 하고, 놀이 명칭과 시기·주체만 제시되었을 뿐 구체적인 놀이 방법이 생략된 경우가 허다하다. 이 책의 분량이나 서술의 치밀성을 살펴보면 앞서 나온 무라야마 지준의 다른 저술에 비하여 완성도가 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당시의 민속놀이의 전체 상을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전국의 놀이 명칭과 분포를 파악하는 데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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