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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줄다리기는 마을이나 지역 공동체 단위에서 펼쳐지는 대동놀이 중 하나로, 두 편으로 나뉘어 줄을 당기며 승부를 겨루는 놀이이다. 단순한 힘 겨루기를 넘어 공동체의 결속력, 풍요에 대한 기원, 나아가 성적 상징성과 의례적 의미까지 복합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한국 전통놀이의 대표적인 형식이다.

내용

과거의 한국 사회에서 줄다리기는 단순한 놀이나 오락을 넘어서 마을 전체가 하나로 모이는 축제의 형태를 띠었다. 특히 설이나 대보름과 같은 특정 시기에 마을 구성원이 집결하여 줄다리기를 실시하면서 공동체적 소속감과 협동심을 확인하곤 했다. 줄다리기의 형태는 참여하는 집단의 규모, 연행 시기, 공간의 구조, 줄의 종류와 제작 방식, 그리고 종교적 맥락에 따라 매우 다채롭게 나타난다.

전승된 줄다리기의 형태는 크게 ‘고을형’과 ‘마을형’으로 나뉘며, 그 안에서도 ‘닫힌’ 형태와 ‘열린’ 형태로 다시 세분된다. 고을형 줄다리기는 특정 읍치 중심으로 이뤄지며, 주민들이 평상시에는 자체적으로 놀이를 즐기다가 흉년이나 전염병 등의 위기가 닥치면 규모를 확대하여 지역 전체가 참여하는 대형 줄다리기로 발전했다. 이에 반해 마을형은 소규모로 시작해 여건에 따라 인근 마을과의 연합 형식으로 확장되기도 하며, 특히 교통 중심지나 군사적 요충지에서 열린 마을형 줄다리기가 성행했다.

줄다리기의 시기는 대부분 정월 대보름에 집중되어 있으나, 일부 지역에서는 단오나 추석, 혹은 지역 축제일에 맞춰 열리기도 했다. 놀이가 이루어지는 공간 역시 유연하게 설정되며, 넓은 논바닥, 강변의 공터, 마을 어귀, 때로는 좁은 골목길까지 줄을 펼치기에 적합한 곳이면 어디든 가능했다. 특히 해안 지역에서는 해변 모래사장이 자주 활용되었으며, 동해안 일부에서는 백사장이 전통적인 줄다리기 장소로 자리잡았다.

놀이를 위한 편 구성은 대개 남성과 여성의 성별 구분 또는 마을 내 지역 구분으로 이루어진다. 여성 편에 미혼 남성이 포함되기도 하며, 경기와 호남 일부 지역의 줄다리기에서는 이 같은 성별 혼합 편성이 흔하게 나타난다. 지역 구분은 마을의 상하, 동서, 남북 등 공간적 기준을 기준으로 편을 가른다.

줄의 재료는 지역의 환경과 생업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볏짚이 사용되지만, 예전에는 칡, 삼, 새, 굴피, 대나무 등이 폭넓게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포항 장기면의 경우 다양한 식물을 엮어 줄을 만들었으며, 동해 연안 일부에서는 산업화 이후 마닐라 로프나 나일론줄을 사용하기도 했다. 짚을 중심으로 줄이 일원화된 배경에는 수도작의 보편화로 인한 볏짚의 안정적인 공급이 있었다.

줄의 형태는 외줄과 쌍줄로 구분되며, 외줄은 하나의 굵은 줄만을 사용하는 반면, 쌍줄은 암줄과 수줄이 따로 존재하며, 두 줄을 연결하는 과정 자체에 상징성이 부여된다. 외줄은 주로 호남과 일부 동해안 지역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며, 쌍줄은 대부분의 내륙과 영남 지역에 분포한다. 쌍줄은 중심 줄인 몸줄에 수많은 종줄을 달아 사람들이 이를 잡고 당기도록 되어 있으며, 그 자체가 협력의 상징 구조를 형성한다.

줄다리기의 과정에는 본놀이 외에도 다양한 앞놀이와 뒷놀이가 존재한다. 대표적인 앞놀이로는 줄머리(줄고)를 마을 안팎으로 돌며 사람을 태운 채 상대편과 마주치면 줄머리를 부딪치는 ‘고싸움’이 있다. 광주 남구 칠석동에서 전승되는 고싸움놀이는 이러한 의식의 대표 사례다. 반면 외줄에서는 이러한 앞놀이보다는 본 줄다리기에 집중되는 경향이 강하다.

줄다리기 이후 이어지는 뒷놀이는 지역에 따라 다르며, 승전놀이, 상여놀이, 박시싸움, 징싸기, 곳나무싸움 등 이름도 다양하다. 이 중 경북 영천의 곳나무싸움은 줄다리기에 사용된 소도구인 곳나무를 활용한 독자적 양식을 지녀 주목된다.

줄이 사용된 후의 처리 방식은 놀이의 목적과 상징성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줄을 해체하여 물리적 또는 주술적 목적에 재활용하는 소비형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줄을 일정 기간 또는 영구적으로 보존하는 보존형 방식이다. 소비형 중에는 줄을 강에 던져 액운을 흘려보낸다는 송액형이 있으며, 보존형에는 줄을 당산나무에 걸어두었다가 다음 해 교체하는 ‘일년보존형’, 또는 아예 동신처럼 영구히 보관하는 ‘영구보존형’도 있다.

한편 줄다리기는 당산제나 마을굿과 같은 제의적 맥락과 긴밀하게 연결되기도 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줄다리기를 먼저 하고 제사를 지내는 ‘선놀이후제사형’이 있는 반면, 제사를 먼저 지낸 뒤 줄다리기를 벌이는 ‘선제사후놀이형’도 존재한다. 호남지역에서는 전자의 사례가 많으며, 이 경우 줄 제작과 당산제, 마을 돌기 등 일련의 과정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특징 및 의의

줄다리기는 단순한 신체 놀이를 넘어, 공동체적 상징을 구현하는 복합적 문화 행위이다. 축제 속에서 일상의 질서가 전도되며, 젠더, 계층, 권력 등의 사회적 구조가 일시적으로 해체되는 경험은 놀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예컨대 전라도 지역에서는 여성 편이 자주 승리하는데, 이는 평소 남성 중심의 일상 권력이 축제 속에서 반전되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쌍줄다리기에서는 남녀가 밀접하게 접촉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사회적 금기나 유교적 도덕 기준이 일시적으로 무력화된다. 신체 접촉이나 언어적 표현에서 드러나는 성적 상징은 줄다리기의 축제성과 연결되며, 이는 억압된 성의 해방, 풍요의 모의 등을 담은 구조로 해석된다. 특히 암줄과 수줄이 결합되는 순간은 성적 결합의 의례적 재현으로 간주되며, 풍요다산을 비는 민속 주술적 세계관과도 맞닿아 있다.

이 외에도 줄 자체를 용으로 인식하는 지역도 많다. 전북 정읍에서는 줄의 앞부분을 ‘용대가리’, 뒷부분을 ‘용꼬리’라 부르며, 포항 울진 지역에서는 암줄과 수줄을 각각 ‘암용’, ‘숫용’이라 칭한다. 이처럼 줄과 용을 동일시하는 인식은 줄다리기가 단순한 놀이가 아닌, 용신신앙 및 농경의례와 연결된 주술적 행위임을 방증한다.

여성의 편이 승리할 경우 그것을 공동체의 평안과 연결짓는 사고방식은 점세(占歲)의 일환으로, 여성이 지닌 생식력과 풍요의 상징성이 투영된 믿음이다. 여성의 생산성과 줄의 결합은 단순한 승패를 넘어, 해마다의 농경 운세를 점치는 주요한 민속 실천으로 이어졌다.

줄다리기는 지역 공동체의 연대, 신앙, 사회 규범, 예술, 노동, 놀이 등이 하나의 구조 안에서 교차하는 복합 문화 형식이다.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줄다리기 행사가 명절이나 축제 때 열리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국가무형문화재나 세계유산 등재를 통해 문화적 가치를 재조명받고 있다. 이는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닌,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공동체적 문화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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