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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찾기놀이 정의, 내용, 특징 및 의의

정의

두 팀으로 나누어 노래를 부르고 가위바위보를 통해 상대편 사람을 데려오는 전통놀이이다.

내용

지역에 따라 이 놀이는 ‘꽃 찾기놀이’ 또는 ‘우리 집에 왜 왔니’라고 불린다. 충남 논산 지역에서는 ‘사람빼앗아오기놀이’, 충북 영동 지역에서는 ‘달맞이놀이’ 혹은 ‘동대문놀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만 놀이 방식은 동일하다. 일본에도 유사한 형태의 놀이가 존재하나, 일본은 누구를 선택할지 논의하는 과정이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즉석에서 상대편 사람을 지정하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진다.

우리나라의 전통놀이 중에서 두 편이 서로 밀고 당기며 대결을 펼치는 ‘절구세’라는 놀이가 있다. 이 놀이는 때로 ‘월월이청청’과 함께 진행되기도 하지만, 독립적으로 진행되는 경우도 많다. 참가자들은 양 팀으로 나누어 서로의 어깨를 잡고 발을 높게 들며 앞으로 밀어붙인다. 이때 “절구세 절구세 유지나 장판에 절구세…”라는 특유의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상대방을 위협하고 몰아붙인다. 놀이 공간은 넓을수록 좋지만 최소한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정도의 공간이면 충분하다.

놀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한쪽 편에서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라는 노래를 부르며 상대편을 향해 다가가고, 상대편은 이 노래가 끝나는 동시에 “꽃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라고 대응하며 반격한다. 노래와 함께 밀고 밀리는 과정에서 특정한 사람을 지목하면 가위바위보를 통해 승부를 겨루고, 승리한 쪽이 상대편에서 한 사람을 데려간다. 참가자를 빼앗은 쪽은 “이겼다 꽃바구니를 외치며 기쁨을 표현하고, 빼앗긴 쪽은 “졌다 분하다”라고 맞받아친다. 이 과정이 반복되어 한 팀이 모두 상대편으로 옮겨가면 놀이가 종료된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악보
우리 집에 왜 왔니 악보

특징 및 의의

이 놀이의 주요 목적은 상대팀과의 신체적이고 심리적인 대결을 통해 집단의 결속과 단결력을 다지는 데 있다. 큰 목소리와 활발한 몸짓으로 상대방에게 위협을 가하는 과정에서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특정인을 가위바위보로 빼앗는 요소는 놀이를 지속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통적인 예의범절과 관련하여 “우리 집에 왜 왔니?”라는 질문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도 있지만,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옛 마을 공동체의 태도를 생각하면 오히려 전통적 관습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논산의 민속(논산문화원, 1992), 부여의 민속놀이(강성복, 부여문화원, 1994), 전통문화의 맥(경북교육위원회, 경북인쇄소, 1987), 제주전승동요(좌혜경, 집문당, 1993).

폭죽놀이 정의, 역사, 내용, 특징 및 의의

정의

폭죽놀이는 음력 섣달그믐 저녁에 행해지는 의례적 행위로, 마디가 있는 대나무를 불에 태워 큰 폭음을 내어 사악한 기운과 재앙을 몰아낸다고 여긴 주술적 풍속이다. 이 행위는 단순한 소음 놀이가 아니라, 한 해의 액운을 제거하고 새해의 복을 맞이하는 데 집중된 전통 문화로 이해된다.

역사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고대 중국에서는 폭죽이 전쟁의 신호 도구로 활용되었으며, 이후 민간으로 전해지며 축제나 의례에 사용하는 주술적 도구로 변모하게 되었다. 수나라 시기의 기록에 따르면, 7세기 무렵부터 대나무를 태워 폭음을 내는 원시적 폭죽 풍습이 이미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는 정월 초하루 새벽, 닭이 우는 순간을 기점으로 폭죽을 터뜨려 악귀를 물리치는 행위가 일상화되었고, “폭죽 한 번에 묵은해가 사라진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그 의미가 깊었다. 문헌 『연경세시기』에서는 섣달그믐부터 정월 한 달 내내 폭죽 소리가 멈추지 않으며, 제야 전후로는 특히 그 빈도와 규모가 극대화된다고 전한다.

또한 『신이경』에 등장하는 설화에서는, 외발로 다니며 두꺼비와 게를 먹고 사는 신비로운 존재 '산조(山臊)'가 폭죽 소리에 놀라 도망간다는 내용이 실려 있어, 폭음이 신비롭고 위협적인 존재를 쫓는 데 효과적이라는 민속적 믿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16세기 후반 무렵부터 폭죽이 오락적인 목적을 갖게 되었으며, 이후 기술이 발전하면서 전국 규모의 경연 대회까지 열릴 정도로 대중화되었다. 오늘날에도 일본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폭죽 제작 기술과 전통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조선 후기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궁중에서는 섣달그믐 전날부터 불화살과 연종포를 쏘고 징과 북을 울리며, 궁궐 안팎에서 대대적인 벽사진경(辟邪進慶)의례를 진행하였다. 이는 단순한 행사라기보다 질병과 액운을 몰아내는 의식적이고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 정례행사였으며, 대중도 이를 모방하여 민간에서도 폭죽과 유사한 행위를 이어갔다.

이 전통은 개화기까지도 서울과 지방을 막론하고 널리 행해졌으며, 1940년대 초까지 아이들이 종이폭죽을 들고 골목에서 터뜨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한때 중단되었던 이 풍속은 1960년대를 기점으로 다시 활성화되었고, 지금은 연말연시뿐 아니라 다양한 기념행사나 축제, 결혼식 등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도구로 활용된다.

내용

정확한 방식은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해가 저문 섣달그믐 저녁 무렵, 가정에서는 마당 또는 대문 앞에 장작을 피우고, 일정 길이로 자른 대나무를 불에 던진다. 이때 마디를 따라 압축된 내부 공기가 급속히 팽창하면서 폭음이 발생하고, 이는 사악한 존재가 놀라 도망가는 효과를 낸다고 여겨졌다.

이러한 대나무 태우기 행위는 ‘요죽(燎竹)’ 혹은 ‘대불놓기’라고도 불리며, 이를 통해 집 안의 잡귀나 악한 기운을 몰아내고 깨끗하고 정결한 상태로 새해를 맞는다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귀신달굼불’ 또는 ‘귀신불’이라 하여, 귀신을 태워 없애는 듯한 상징적 행위로 해석되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뽕나무 숯가루를 달걀 꾸러미처럼 말아 폭죽처럼 만들어 태우기도 하였다. 이러한 방식은 단순한 놀이를 넘어서 주술적 기능이 부여된 민속의례로 기능했다.

중국에서는 화약이 개발되기 전에도 여러 개의 대나무를 연결하여 차례차례 폭음이 이어지도록 한 초기 형태의 연쇄 폭죽이 존재했으며, 이것이 후일 불꽃놀이로 발전하는 기초가 되었다.

한편, 고려 후기부터 조선 초기에는 폭죽을 놀이와 결합한 형태로 ‘화희(火戱)’ 혹은 ‘화산희(火山戱)’라는 명칭으로 즐겼다. 이는 등놀이와 병행하여 진행되기도 했으며, 화약을 종이에 감싼 뒤 심지를 붙여 불을 붙이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오늘날의 불꽃놀이와 유사한 방식이었다는 점에서, 조선시대에도 이미 시청각적 흥미를 자극하는 폭죽놀이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특징 및 의의

전통 사회에서 폭죽놀이의 의의는 단순한 놀이에 그치지 않고, 주술과 종교적 신념이 결합된 행위로 여겨졌다. 정월 초하루를 중심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전환점에서, 불과 소리를 통해 악귀를 쫓고 복을 맞이하려는 태도는 모든 구성원이 안전하고 풍요로운 한 해를 보내고자 하는 공동체의 염원을 담은 것이었다.

폭죽의 소리는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재난과 병마, 악령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어 수단이었다. 굉음은 귀신의 존재를 경계하며, 인간이 자연과 보이지 않는 세계를 제어하려는 상징적 수단으로 기능하였다. 이러한 폭죽놀이는 음력 설 명절이라는 시간성과 ‘대나무’나 ‘화약’이라는 재료의 상징성까지 결합되며, 다층적인 문화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또한 이 풍습은 마을 공동체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아이들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수행하는 과정은 세대 간 전통 계승의 장이 되기도 했다. 현대에는 폭죽이 축제의 연출 도구로 변모하였지만, 여전히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폭음을 터뜨리는 순간의 카타르시스는 과거의 정신적 구조를 계승하는 형태로 남아 있다.

폭죽놀이는 오늘날에도 단절되지 않고, 다양한 사회적 맥락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변용되며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명절뿐만 아니라 졸업식, 경기 우승, 결혼식, 축제 개막식 등에서도 활용되며, 전통의 상징성을 잊지 않은 채 현대의 시각적 문화와 결합된 형태로 재해석되고 있다.

참고문헌
東國歲時記, 조선상식문답–풍속(최남선, 동명사, 1948), 한국세시풍속(임동권, 서문당, 1973), 한국의 세시풍속(장주근, 형설출판사, 1984), 한국민족문화대백과(encykorea.aks.ac.kr).

망 차기놀이 정의, 내용, 특징 및 의의

정의

망 차기놀이는 땅 위에 놀이판을 그려놓고, 한쪽 발로 중심을 잡은 채 작은 돌을 차며 정해진 경로를 따라 이동하는 전통 아동 놀이이다. 흔히 ‘돌차기’ 또는 ‘사방차기’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며, 평형감각과 집중력을 요구하는 점에서 단순한 신체 활동을 넘어 두뇌 회전과 공간 감각을 요하는 복합 놀이로 여겨진다.

내용

이 놀이는 다양한 명칭과 형태로 전국적으로 전파되었다. ‘망 깨차기’, ‘목자치기’, ‘하늘찌까’, ‘석축(石蹴)’, ‘봉차들방’ 등 지역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나 놀이 방식이 조금씩 달랐으나, 공통적으로 땅 위에 판을 그리고 돌(망)을 차서 이동하는 구조는 유지된다. 이름 중 ‘석축’은 ‘돌로 찬다’는 의미의 한자식 표현이며, ‘찌까’는 충청 지역에서 주로 사용되는 고유 방언이다.

놀이에 참여하는 인원 수는 유동적이지만, 혼자서 연습하거나 두세 명이서 순서를 정해 겨루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때로는 팀을 나눠 경쟁하는 방식도 선택된다. 놀이판은 대개 흙바닥이나 마당, 공터 등에 막대기나 돌로 그리며 시작되며,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사각형 네 칸으로 구성된 '네 밭 판'이다.

먼저, 바닥에 네 개의 칸을 직사각형으로 나눈 다음, 1번부터 4번까지 숫자를 각 칸에 적는다. 그 앞에는 반원 형태의 출입구를 덧그려, 놀이의 시작과 끝을 상징한다. 또 하나의 필수 준비물은 ‘망’이라 불리는 돌로, 손바닥만 한 크기의 납작하고 둥근 돌을 골라야 한다. 이 돌은 발로 차고 움직일 수 있을 만큼 가볍되, 어느 정도 무게 중심이 있어야 한다.

놀이 방법은 단계적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단계는 1번 칸에 망을 정확히 던져 넣는 것으로 시작하며, 참가자는 깨금발(한 발만 디딘 상태)로 1번 칸에 들어가, 들고 있는 발로 망을 2번 칸으로 차 보낸다. 이 과정에서 발이나 망이 놀이판 선에 닿으면 실격 처리되어 다음 사람에게 순서가 넘어간다. 2번 칸에 도달하면 다시 같은 방식으로 3번, 4번 칸까지 진행하며, 마지막에는 출발점까지 되돌아와야 단계가 완성된다.

한 단계를 성공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며, 예를 들어 2단계에서는 2번 칸에서 시작해 3, 4, 1번 칸을 차례로 거쳐야 한다. 단계가 올라갈수록 ‘깨금발만 하고 지나치는 칸’이 늘어나며, 실제로 망을 차야 하는 칸이 줄어들기 때문에 체감 난이도는 다소 완화된다.

놀이가 끝날 무렵, 어떤 놀이판에서는 '하늘'이라 불리는 마지막 칸이 추가되기도 한다. 이 칸에 도달하면, 망을 발등에 올려 찬 후 공중에 뜬 망을 손으로 잡아야 비로소 ‘땅을 따먹는’ 권리를 획득하게 된다. 이 마지막 동작은 균형감각과 손발 협응을 요구하는 고난이도 기술로, 놀이의 백미로 여겨졌다.

망 치기 판
망 치기 판

단순한 4칸 구조에서 출발한 놀이판은 점차 형태가 다양해지며 진화했다. 칸의 개수를 늘리거나, 내부에 X자를 추가하거나, 이동 순서를 뒤섞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난이도를 조절했다. 특히 ‘봉차들방’ 같은 변형판에서는 숫자 대신 ‘봉(눈감고)’, ‘차(차고)’, ‘들(한발로 들고)’, ‘방(들고 이동)’과 같은 문자를 삽입해 특정 행동을 요구하게 하였다. 이는 단순한 발차기에서 놀이를 역할극 형태로까지 확장시킨 예다.

충청남도 부여 일대에서는 이 놀이를 '찌까'라고 부르며 ‘하늘찌까’, ‘임금찌까’, ‘육찌까’ 등 다양한 버전을 갖는다. 이곳의 찌까놀이는 규칙이나 판 구성에 지역 특색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으며, 특정 칸마다 점수를 매기거나 특정 방식으로 이동해야만 점수를 획득할 수 있는 룰이 존재한다. 이러한 형태는 놀이의 재미를 더할 뿐만 아니라, 승부에 전략적인 요소를 가미하게 해준다.

특징 및 의의

망 차기놀이는 단순히 발로 돌을 차는 놀이에 그치지 않는다. 신체적 균형감각과 집중력을 요구하는 동시에, 순서와 규칙을 이해하고 지키는 인지적 훈련까지 동반하는 전인적 활동이다. 특히 발을 사용하는 미세한 조작 능력이 필요한 만큼, 유년기 아이들의 운동신경 발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놀이판의 구조가 지역별로 다르며, 동그라미나 별 모양, 숫자 배열이 뒤섞인 복합 도형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승되었다는 점은, 이 놀이가 한 지역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지역 문화와 유희적 상상력이 결합되어 유기적으로 발전해왔음을 보여준다.

또한 망 차기놀이는 아이들 사이의 경쟁과 협력, 규칙 준수, 순서 기다리기 등 사회적 기술을 자연스럽게 익히는 장으로 기능했다. 놀이 도중 서로가 실수했을 때의 배려, 또는 이겼을 때의 환호와 졌을 때의 수용 역시 이 놀이가 가진 교육적 가치를 뒷받침하는 요소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 망 차기놀이는 거의 사라진 상태다. 이는 놀이에 필요한 시간과 공간이 점차 축소되었기 때문이며, 동시에 아날로그적 놀이 방식이 디지털 기반의 활동으로 대체된 데 따른 문화적 변화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놀이는 여전히 한국 전통 아동놀이의 대표적인 예로 손꼽히며, 전통놀이 복원 사업이나 지역축제에서 종종 재현되고 있다.

망 차기놀이는 놀이에 담긴 민속적 상상력과 공동체성, 그리고 신체성과 전략이 어우러진 종합적 민속 놀이로, 단순한 유희를 넘어 세대를 잇는 문화적 상징물로 평가받을 수 있다.

참고문헌
금산의 민속놀이(강성복, 금산문화원, 1994), 동아시아의 놀이(김광언, 민속원, 2004), 부여의 민속놀이(강성복, 부여문화원, 1997), 서산민속지-하(경희대학교 민속학연구소, 서산문화원, 1987), 조선의 민속놀이(도유호 외, 푸른숲,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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