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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수박희(手搏戲)는 두 사람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마주 선 상태에서 손을 주된 도구로 하여 힘과 기술을 겨루는 전통 무예 기반의 격투 놀이이다. 놀이의 형식은 대결 구조를 따르며, 신체 접촉을 통한 상호 기술 겨룸이 중심이 된다. 이는 단순한 유희의 차원을 넘어, 고대부터 이어져 온 신체 단련 및 무예 연습의 실질적 기능도 수행해온 한국 전통 격술의 중요한 형태로 여겨진다.

수박희
수박희

내용

수박희는 고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전래된 신체기반 격투 기술 놀이로, 오늘날의 택견, 권법, 심지어는 서양의 권투나 손뼉치기 놀이와도 일정한 연관성을 갖는다. 놀이의 명칭에서 ‘수박(手搏)’은 글자 그대로 ‘손으로 싸운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이는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맨손 대결이라는 특징을 내포한다.

수박희의 기원은 중국으로 추정되며, 관련 기록은 한나라 시기의 역사서인 『한서(漢書)』에서 발견된다. 이 문헌에는 수박 기술이 『수박육편(手搏六篇)』이라는 제목으로 정리되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며, 당시 무술로서의 체계화가 상당히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후한 시기의 묘지인 허난성 신미의 다후정 한묘에서는 수박 기술을 묘사한 벽화도 발견되었다. 이는 수박이 단순한 유희를 넘어 무예로서 광범위하게 실천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중국 문헌에는 이 격투 기술이 변(抃), 수벽(手擘), 수박(手拍), 권(拳), 권법 등 다양한 이름으로 변용되어 기록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고구려 고분 벽화인 안악 3호분과 무용총에서 수박희의 흔적이 확인된다. 특히 역사(力士)의 형상이나 무예 장면은 수박희 또는 각저희(씨름과 유사한 격투 놀이)가 무예의 한 형태로서 고대 국가 체계 내에서 숭배받는 존재들과 연결되었음을 암시한다. 이는 힘과 기술을 겸비한 인물이 사회적 존경의 대상이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도 해석될 수 있다.

고려 시대에 접어들면서 수박희는 단순한 민속 놀이를 넘어 군사적 훈련의 수단으로 확대되었다. 『고려사』에는 정중부가 군사들에게 수박희를 시연하게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최충헌은 수박희에 능한 병사들에게 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충혜왕은 이 격투 기술을 특히 즐겨서 정자나 궁중, 사찰 등에서 자주 수박희 경기를 관람했다고 전해진다. 반면, 무신 두경승과 같은 인물은 수박희를 천한 행위로 간주하기도 했는데, 이로 인해 당시 무인 계층 내에서도 수박희에 대한 인식이 일관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수박희는 군사 훈련과 여흥의 수단으로 계속 이어졌다. 태종과 세종, 세조 등 초기 군주들은 무관 선발이나 병사 훈련을 위한 실전 무예로서 수박희를 적극 활용했다. 기록에 따르면 수박희 시합이 벌어지는 동안 왕이 직접 참관하거나, 외국 사신이 하루 종일 이를 구경한 경우도 있었으며, 때로는 경기 도중 사망자가 발생할 정도로 격렬한 승부가 펼쳐지기도 했다. 조선 초기에는 중(僧)들도 수박희를 즐겼다는 기록이 전해져, 당시 수박희가 특정 계층에 한정되지 않고 광범위한 계층에서 행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민간에서도 수박희는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전북 익산 여산과 충남 논산 은진 사이의 경계 지역인 작지 부근에서는 매년 7월 15일 주민들이 모여 수박희 대결을 벌였다고 한다. 이는 수박희가 군사 훈련뿐만 아니라 지역 공동체 간 교류와 경쟁의 수단으로 기능했음을 보여준다.

정조 시대 실학자들이 집필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는 수박희의 영향을 받은 권법이 수록되어 있다. 이 권법은 현대의 권투와 유사해 보이지만, 주로 손 기술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발 사용은 제한적으로 나타난다. 해당 도상에서는 두 사람이 상의를 벗고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마주 서서, 손을 쥐거나 펴는 자세를 반복하며 주먹과 손바닥을 이용한 타격 자세를 취하고 있다. 손을 좌우로 펼치거나 교차하는 모습, 두 손을 위아래로 엇갈리게 움직이는 동작 등도 묘사되어 있으며, 경우에 따라 다리를 이용한 동작도 등장한다. 다만 중심은 어디까지나 손 기술에 두고 있다.

후대 학자들은 수박희의 성격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제시해 왔다. 최남선은 수박희를 주먹이나 손바닥을 사용하는 권투 형태의 격투기로 규정했으며, 그 어원과 형태 분석을 통해 서양식 복싱과 유사한 구조였다고 보았다. 이병옥과 이용복은 수박희를 택견의 일종으로 간주했으며, 씨름과 각력(角力)까지 포괄하는 전통 격투 무술의 범주에 포함시켰다. 김선풍과 심승구는 수박희를 권법의 분파로 보았고, 이들은 고구려에서 발전한 고급 기술 무예로서 손과 발, 온몸을 활용하는 다양한 기술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 외에도 전호태는 수박희를 무예로 보는 시각과 달리, 장례 의례에서 행해졌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이는 일본에서 씨름이 장례와 관련한 의례적 요소로 사용된 사례와 비교되며, 수박희가 단순한 무술 또는 놀이가 아닌 복합적 기능을 가졌음을 시사한다.

결론적으로 수박희는 손 중심의 격투 무예로 출발하여, 후대로 갈수록 다양한 신체 활용이 더해지면서 오늘날의 택견 등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놀이와 무예의 경계를 넘나든 수박희는, 신체적 능력을 단련함과 동시에 사회적 역할과 의례적 기능까지 수행했던 복합적 문화 유산이라 할 수 있다.

특징 및 의의

수박희는 손을 주요한 도구로 삼아 힘과 기술을 겨루는 구조의 격투기 형태를 지닌 한국 전통 놀이로서, 단순한 놀이를 넘어 군사적 훈련과 무예 체계의 일부로 기능해 왔다. 특히 고대부터 고려,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문헌 및 시각 자료에서 수박희는 무력의 상징이자 민속 문화로서의 위상을 동시에 지닌다.

초기에는 손 중심의 타격 기술이 주를 이루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발기술과 유연한 전신 움직임이 추가되며, 택견이나 현대 무술의 형태로 확장되었다. 또한 수박희는 민간 의례, 지역 간 공동 놀이, 장례의례 등 다양한 맥락 속에서 실천되었고, 이를 통해 집단의 정체성과 상호 경쟁, 유대감을 고양시키는 역할도 담당했다.

무예적 요소, 놀이적 요소, 의례적 기능이 결합된 수박희는 단순한 격투를 넘어 전통 사회의 종합적 문화 행위로 자리 잡았으며, 그 다면적 의미는 오늘날에도 재해석될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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