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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치기 놀이, 고을모둠 놀이, 깡통 차기놀이 알아보기

리포터 No.5 2025.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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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치기 놀이 정의, 내용, 특징 및 의의

정의

긴 나무 막대 형태의 채를 이용해 나무 공을 쳐서 상대의 구문에 넣거나 결승선을 통과하여 승부를 겨루는 남성의 집단적 승부놀이.

내용

장치기는 마상 격구가 지상화된 것으로, 지상에서 긴 나무 막대를 이용해 나무 공을 쳐서 상대의 구문에 넣거나 결승선을 통과시키는 남성 중심의 승부놀이이다. 놀이 방법으로 보아서는 필드하키와 유사하다.

장치기는 주로 조선 후기에 초동을 중심으로 겨울철에 널리 전승되던 놀이 형태이며, 명칭은 지역에 따라 장치기·짱치기·공치기·공놀이·얼레공놀이 등으로 다양하다. 문헌상 유사 용어로 격구, 타구打毬, 봉희棒戲 등이 있다. 대체로 장치기는 격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지상 격구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조선 초기에 타구 형태로 왕실에서는 궁정 내의 타구로, 또한 민간에서는 어린이들의 타구놀이에서부터 유래한다. 조선 초기에 궁중에서 왕과 왕실, 신하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타구는 ‘와아窩兒’라는 구멍에 넣는 구멍 투입형으로 미니 골프의 초기 형태이다. 이것은 상류층의 사교적 유흥 문화의 성격을 지닌다.

한편 조선 초 민간의 어린이들이 혜정교에서 주요 인물들을 풍자하며 놀이한 타구는 민간 장치기의 시초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어린이들이 일정한 거리에서 목표물을 타격한 과녁 타격형으로, 내용은 풍자적 성격을 지녔다.

조선 중기 이후 총포의 발달로 인해 마상 격구가 쇠퇴하면서 지상 격구는 민간에서 활발히 전승된다. 구체적 기록이 나타나지 않지만, 구전에 의하면 장치기는 19세기 후반에 이미 일반에 널리 퍼졌다. 그리고 20세기 초반까지 신체접촉이 이루어지는, 초동들의 겨울철 편놀이로 일반화되었다. 한편 이 놀이는 상층의 자제들이나 서당의 학동에게는 상민의 놀이라 하여 억제되기도 했다.

1930년대 초, 경기도 수원에서 농촌 계몽운동을 주도한 젊은 지식인들이 민족의식의 고취, 농촌 계몽 운동, 겨울철 체력 단련의 수단으로 장치기를 적극 권장했다. 곧 지주 출신 젊은 지식인으로 당시 사회주의 운동을 했던 박승극이 농촌 계몽운동 차원에서 야학원 학생들에게 장치기를 보급했다. 그리고 수원의 양감면 용소리에서 신문사의 후원 아래 ‘얼레공대회’라는 조직적 장치기 시합도 개최하였다. 박승극은 수원청년동맹을 앞세워 이 대회를 열었으며, 주로 수원·오산·화성 지역 야학생들 32팀이 참여하는 성황을 이루었다. 당시 장치기협회가 있는 대구를 비롯한 일부 지역도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놀이는 일제강점기에 민족의식을 심고, 겨울철 체력 단련의 수단으로 적극 권장되었다. 한편 대구에서도 장치기협회가 결성되어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보급되었다.

장치기의 분포는 전국적이며, 주요 전승 집단은 10대 중반에서 20세 초반의 초동이나 젊은이들이지만 때에 따라 나이 든 성인들도 참여한다. 주로 동네 대항이나 초동 사이에 나뭇짐 날라주기, 담배와 술내기 등의 내기 시합 형태로 이루어졌다. 참여 인원은 일정하지 않아 6∼12명을 두 편으로 나누어 시합을 하지만, 20명 이상이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놀이 시기는 주로 농한기인 겨울과 초봄이며, 주로 초겨울에 나무하러 갈 때에 놀이가 이루어졌다.

놀이 도구는 크게 채와 공으로 나뉘는데, 주로 소나무로 만든다. 채는 긴 나무에 끝이 구부러져서 공을 칠 수 있는 필드하키 형태의 채로 대략 1∼1.5m 정도이다. 지역에 따라 장채, 짱매, 공채, 짝지, 공채, 장치기대, 공치는 채, 얼레공채 등으로 불리며 간혹 지게 작대기도 사용된다. 그리고 공은 단순히 공, 얼레공, 짱공, 장치기공이라 부른다. 보통 소나무의 관솔이 박힌 부분을 사용하며, 크기는 어른 주먹 정도이다.

놀이 공간은 일정하지 않고 언덕·산기슭·냇가·잔디밭·논바닥·얼음판 등으로 다양하다. 대체로 산악 지대에서는 고개·산기슭·냇가이며, 평지에서는 잔디밭이나 논바닥에서 놀이가 이루어졌다. 놀이판의 크기는 중앙에서 35m(50보) 또는 20∼25m 정도이며, 그 양쪽에 골문에 해당하는 구문을 세운다. 구문의 간격은 일정치 않으나, 대략 1∼2m 간격으로 말뚝을 세우거나 작은 돌을 갖다 놓는다.

놀이 시작 방법은 지역에 따라 다르다. 양쪽 대표가 중앙에 채를 들고 마 주서서 땅에 있는 공을 서로 치는 방식은 ‘땅장’ 또는 ‘따굴’이라 한다. 또 중앙에 구멍을 파 공을 넣고 이 공을 동시에 치는 ‘아랫짱’, ‘구멍공’ 형태가 있는데, 이때 구멍은 대개 직경 20㎝ 정도이다. 한편 위로 던진 공이 떨어지는 것을 서로 치는 ‘웃짱’이 있는데 이것을 ‘땡공’ 또는 ‘딴장’, ‘천장장’이라고도 한다. 또는 몸을 한 바퀴 돌려 치는 ‘소래기’(물네장’, ‘돌장)가 있고, 공을 굴리는 ‘굴러공’, 다리 오금 사이로 던져 치는 ‘오금장’도 있다.

공을 채로 쳐서 상대의 골문에 넣으면 1점을 얻는다. 대개 5점이나 10점 내기 형태가 많으며, 시간을 정해 하는 경우도 있다. 경우에 따라 상대방의 일정한 선을 넘어가면 득점하는 방식도 나타난다.

민간의 장치기는 20세기 중반인 광복 전후와 6·25전쟁 직후에 대부분 소멸한다. 광복 이후의 혼란, 전쟁에 의한 놀이 기반의 약화, 급격한 도시화에 의한 농촌 남자 아이들의 감소, 전후 땔감 채취 방식의 변화 등에 따라 장치기는 급격히 사라진다. 그러다가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일부 재현되기도 했으나, 현재 현장에서는 전승이 소멸되었다.

특징 및 의의

장치기는 조선시대에 상류층 남성들의 개인적 기량 과시와 여흥 놀이의 기능에서 점차 겨울철이나 농한기에 초동이나 10대 남자들 중심으로 노는 집단적 승부놀이로 바뀌어갔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의식을 함양하는 농촌 계몽 운동의 차원에서 권장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장치기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의미와 기능을 지니고 변화되어 왔다. 장치기는 공간의 제약이 없으며, 도구는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중성을 지니며 광범위하게 전승된 놀이 형태이다.

고을모둠 놀이 정의, 내용, 특징 및 의의

정의

책의 중간을 임의대로 펴서 그 안에 있는 글자가 들어간 고을 이름을 누가 많이 찾는가와 그 고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를 겨루는 놀이.

내용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고 통신수단도 없던 시기에 각 고을 명칭과 위치를 가르쳐 주기 위해 만든 놀이이다. 주로 서당에 다녀 한자를 익힌 아이들이나 할 수 있는 놀이였기에 널리 행해지지 않았다.

스튜어트 컬린(Stewart Culin)의 『한국의 놀이(Korean Games)』에 ‘Kol─Mo─Tom─Ha─Ki(골모둠하기)’라고 소개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구한말까지는 행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기록된 『조선의 향토오락朝鮮の鄕土娛樂』에 소개되었는데 방법은 아래와 같다.

갑, 을 두 편으로 나누어 책 속에서 어떤 글자를 뽑아서 이 글자가 붙은 고을 이름을 부른다. 예를 들어 ‘영’자라고 말하면 상대편에서 ‘영’자로 시작하는 ‘영동군’, ‘영천군’, ‘영흥군’ 등을 각 편이 서로 교대로 제창하고 하나의 군명을 1점씩 계산하여 승패를 정한다.

  • 수원

근래에 우리나라 전도를 펼쳐 놓고 한 사람이 ‘인천’하고 부르면 나머지 사람이 찾고 제일 먼저 찾은 사람이 다른 지명을 부르는 식으로 놀기도 한다. 그 밖에 책의 특정한 쪽수를 펼쳐 놓고 그 안에 있는 글자를 조합하여 고을 명을 많이 만드는 식으로 놀기도 한다. 즉 펼친 쪽에 ‘아름다운 영혼이여 그 주인은 누구인가?’는 구절이 있다면 ‘영혼’의 ‘영’자와 ‘주인’의 ‘주’자가 합쳐져 ‘영주’란 지명을 찾는 것이다. 그밖에 ‘영혼이여’에서 ‘여’자와 ‘주인’의 ‘주’자로 ‘여주’를 찾을 수도 있다. 이렇게 많은 지명을 찾아 모으는 사람이 이기는 방식이다. 지명을 찾아 모으는 방법에서 조금 발전한 형태는 찾은 지명에 대해 서로 묻고 답하는 식으로 하기도 한다. 즉 상대가 ‘영주’를 찾았으면 ‘영주는 어느 도에 속해 있는가?’라고 묻고 ‘경상북도’라고 답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감점되는 식이다. 이런 놀이는 우리나라의 지명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가 있어야 할 수 있기 때문에 10세 이후에나 가능한 놀이이다.

특징 및 의의

우리나라의 명승지를 놀이판에 그려 놓고 주사위나 윤목輪木을 던져 끗수에 따라 돌아다니는 ‘람승도(남승도)’란 놀이가 있다. 이는 각 도의 지명과 명승지를 놀이판에 써 놓은 놀이판이 준비되어야 한다. 이 놀이는 단지 지명뿐 아니라 명승지를 아는 데 도움이 된다. 구한말 서양인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남긴 기록에 의하면 한국인들이 유난히 여행을 좋아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특히 미국인 퍼시벌 로웰(Percival Lowell)은 『내 기억 속의 조선, 조선 사람들』에서 미국인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의 중산층과 비교해도 조선 사람들이 여행을 더 좋아한다고 쓰고 있다. 이런 여행에 대한 관심은 어릴 적 고을모둠과 일정 부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깡통 차기놀이 정의, 내용, 특징 및 의의

정의

숨어 있다가 술래 몰래 깡통을 차고 다시 숨는 놀이.

내용

숨바꼭질과 두레박이나 깡통이 만나 만들어진 놀이로 깡통을 이용한다고 해서 통차기 또는 깡통 차기라 한다. 놀이에서 가장 극적인 상황이 발로 깡통을 차는 행위에 있어 놀이의 이름이 되었다. 기존의 숨바꼭질이 고정된 벽이나 기둥을 집으로 했다면 이 놀이는 움직이는 집을 사용한다는 측면에서 숨바꼭질에서 한 단계 발전된 형태이다.

일제강점기의 기록에 의하면 경기도 가평 지방에 ‘통차기’란 제목으로 깡통 대신 두레박을 이용한 방법이 구체적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지금과 같은 형태이다. 그밖에 평안남도 안주 지방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6·25전쟁 이후 미군이 우리나라에 주둔하면서 통조림이 흔해져 빈 두레박이 깡통으로 바뀌게 된다. 기존 두레박은 서너 번 차면 깨졌는데, 철이나 알루미늄 깡통은 이 문제를 해결해 주어 선호되었다.

영동과 영서 지방에서는 깡통에 돌을 넣어 큰 소리가 나게 했다고 하고 금산, 서산, 북한 등지에도 이 놀이가 소개되고 있다. 이 놀이가 오늘날 행해지는 형태 그대로 자세히 소개한 사람은 최상수로 깡통 차는 횟수, 술래가 다 찾지 못해 세 번 깡통이 차였을 경우의 벌칙 등을 소개하고 있다.

먼저 직경 30~40㎝ 정도의 원을 그리고 그 안에 빈 깡통을 놓고 시작한다. 준비가 되면 가위바위보로 술래를 정한다. 술래 아닌 사람은 누구나 깡통을 찰 수 있는데 한 사람이 세 번 찰 수도 있고 세 명이 한 번씩 나누어 찰 수도 있다. 술래가 깡통을 주워 원 안에 넣는 사이에 모두 숨어야 한다. 술래는 깡통을 원 안에 넣고 숨은 사람을 찾으러 다닌다. 만약 숨은 사람이 발견되면 그 사람 이름을 대고 깡통을 밟으며 ‘어디 어디에 있는 아무개 꽝’ 하면 그 사람은 잡히게 된다. 발각된 사람은 깡통 주위에 있어야 한다. 만약 발견되었더라도 술래보다 먼저 뛰어 나와 깡통을 차면 잡혔던 사람 모두가 다시 도망쳐서 숨게 된다. 또한 술래 몰래 나와서 술래가 ‘꽝’ 하기 전에 깡통을 차도 마찬가지로 잡혔던 사람 모두 도망가서 다시 숨는다. 술래가 숨은 사람을 모두 찾으면 처음 발각된 아이가 술래가 되어 새로 시작하거나 가위바위보로 술래를 다시 정한다.

특징 및 의의

심우성은 『우리나라 민속놀이』에서 이 놀이를 소개하며 “이 놀이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아이들 놀이의 형태를 고스란히 전승하였다는 점에서 깡통차기 역시 우리나라 민속놀이로 간주될 만하다.”라며 놀이의 소재만 깡통이지 전통의 맥을 그대로 지니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가까운 일본에도 이와 비슷한 놀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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