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기줄다리기의 민속학적 탐구: 공동체 의례와 갈등 해소의 민속

[민속학자가 심층 분석하는 삼척 기줄다리기. 게줄 이름의 유래부터 허목 부사의 기원, 독특한 술비통 제작, 암수줄 결합 의례, 놀이 과정, 공동체적 의미까지 상세히 조명합니다.]

한국 줄다리기 민속의 다양성: 지역과 의미

줄다리기는 한국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집단 민속놀이 중 하나입니다. 단순히 힘을 겨루는 스포츠가 아니라, 공동체의 단합을 다지고 풍요를 기원하며 액운을 물리치는 세시풍속이자 농경 의례의 성격을 강하게 지닙니다. 전국적으로 줄다리기 민속이 발달한 것은 벼농사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 구조와 많은 인원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하는 집단 노동의 경험이 보편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역마다 줄의 형태, 참여 방식, 놀이 절차, 그리고 놀이에 담긴 구체적인 의미와 상징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이러한 지역적 변이 형태는 각 공동체의 고유한 역사, 자연환경, 사회 구조, 그리고 신앙 체계를 반영하며, 민속학자에게는 우리 민속의 풍요로움과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연구 대상입니다.

힘과 풍요의 상징: 줄다리기의 보편성

줄다리기는 동아시아 전반에서 찾아볼 수 있는 보편적인 민속입니다. 굵고 긴 줄은 농사의 근간인 벼의 줄기를 상징하거나, 비를 내리게 하는 용(龍)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줄을 당기는 행위는 하늘의 기운을 끌어내거나 땅의 생산력을 높이려는 주술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두 편으로 나뉘어 힘을 겨루는 것은 공동체 간의 경쟁을 통해 풍흉을 점치거나, 한 해의 운수를 시험하는 예축(豫祝) 행위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지역 환경이 빚어낸 독창적 형태

각 지역의 줄다리기는 그 지역의 특색을 반영하며 독창적인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바다와 인접한 지역은 어업과 관련된 상징을, 산간 지역은 산간 생활과 관련된 요소를 접목하기도 합니다. 강원도 삼척에서 전승되는 삼척 기줄다리기는 이러한 지역적 특성이 매우 강하게 드러나는 줄다리기 변이 형태입니다. 일반적인 줄다리기와 달리 줄의 형태, 제작 방식, 놀이 절차에 독특한 요소들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삼척 기줄다리기: 기원과 갈등 해소의 역사

삼척 기줄다리기는 삼척 지역 사람들이 정월 대보름을 중심으로 공동체의 안녕과 공동선(共同善)을 기원하며 벌이는 집단 민속놀이입니다. 그 기원은 단순한 놀이를 넘어 지역의 역사적 상황과 공동체 내부의 갈등 해결 과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게줄과 기줄: 이름에 담긴 지역성

삼척 기줄다리기에서 사용되는 줄은 흔히 '기줄'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게줄'을 의미합니다. 기둥이 되는 큰 줄에 여러 개의 작은 곁줄이 매여 있는 형태가 마치 게의 발처럼 보인 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이는 삼척이 동해안에 위치하여 게와 같은 해산물과 친숙한 환경이라는 점을 반영하는 이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삼척 게줄다리기' 또는 '삼척 게줄싸움'이라고도 불립니다.

허목 부사의 지혜: 공동 작업에서 놀이로

삼척 기줄다리기의 기원은 1662년(현종 3) 삼척부사로 부임했던 허목(許穆)과 관련이 있다는 설화가 전해집니다. 당시 허목 부사는 치수 사업의 일환으로 제방과 저수지를 축조해야 했는데, 여기에 필요한 많은 양의 새끼줄을 만들고 마을 전체의 힘을 모아 일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이에 허목 부사는 힘들이지 않고 새끼줄을 많이 만들고 마을 사람들이 공동 작업에 즐겁게 참여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줄다리기를 고안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설화는 기줄다리기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특정 시기의 사회적 필요, 즉 대규모 공동 작업을 위한 인력 동원과 협업을 촉진하기 위해 만들어졌음을 보여줍니다.

풍년 기원 vs. 노역 배당: 놀이의 이중적 기능

삼척 기줄다리기는 해안 마을인 부내면과 산골 마을인 말곡면 두 편으로 나뉘어 경쟁했습니다. 놀이에서 이기는 편에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었는데, 이는 줄다리기 민속이 흔히 가지는 풍요 기원의 의미입니다. 그러나 삼척 기줄다리기에는 독특한 이중적 기능이 있었습니다. 놀이에 진 편이 삼척 읍성을 수리하거나 오십천의 제방을 수리하는 등 고된 노역을 배당받았기 때문에, 승리하기 위한 경쟁이 매우 격렬하게 벌어졌다고 합니다. 이처럼 삼척 기줄다리기는 단순한 놀이와 의례를 넘어, 실제적인 사회적 기능(노역 분담)과 경제적 유인(힘든 일을 피하기 위한 경쟁)이 결합된 독특한 형태의 민속이었습니다. 이는 놀이가 삶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필요와 맞닿아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기줄다리기의 과정과 상징: 살아있는 공동체 의례

삼척 기줄다리기는 정월 대보름을 중심으로 여러 날에 걸쳐 진행되는 복합적인 민속 행사입니다. 기줄 제작 과정부터 본 경기, 그리고 경기 후의 절차까지 각 단계마다 공동체의 참여와 다양한 상징이 담겨 있습니다.

놀이 도구의 탄생: 술비통과 기줄 제작

삼척 기줄다리기의 가장 독특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술비통(술비통)을 이용한 기줄 제작 과정입니다.

술비통: 줄 제작의 지혜

술비통은 짚이나 작은 새끼줄을 여러 가닥 동시에 단단히 꼬아 굵은 줄을 만드는 전통적인 도구, 즉 술비질에 사용되는 틀입니다. 두꺼운 나무판에 여러 개의 구멍을 뚫고 받침대에 고정하여 사용하며, 구멍을 통해 짚이나 줄을 넣고 돌리면 여러 가닥의 줄이 한데 꼬여 굵은 줄이 만들어집니다. '술술 비벼 나간다'는 뜻에서 술비통이라 불렸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술비통과 기줄 제작 과정은 농사에 필수적인 줄을 대량으로 만드는 전통 기술이자, 마을 사람들이 함께 힘을 모아 하나의 거대한 결과물(기줄)을 만들어내는 공동 노동의 과정입니다. 이때 <술비통노래>를 부르며 힘든 작업을 신명 나게 이어갔습니다.

마을별 기줄 제작과 집결

정월 10일경 각 마을은 총패장(총패장)의 지시에 따라 이장을 중심으로 집집마다 짚을 모으고 술비통을 이용해 일정한 크기(직경 약 40

50cm, 길이 80

100cm)의 기줄 토막(segment)을 만듭니다. 이 토막들은 보름날 아침, 각 마을 사람들이 어깨에 메고 읍내의 사대 광장(본부)으로 집결합니다. 이는 마을마다 자체적인 준비 과정을 거치고, 완성된 결과물을 가지고 중앙에 모이는 분산과 집결의 과정을 통해 공동체의 독립성과 연대감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축제 분위기: 앞놀이와 길놀이

본격적인 기줄다리기가 시작되기 전, 읍내 사대 광장은 이미 거대한 축제 현장이 됩니다.

농악과 등불, 지신밟기

각 마을에서 도착한 기줄들은 소속된 편으로 모이고, 농악대와 함께 신명 나게 춤추고 놉니다. 농악의 흥겨운 가락은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참가자들의 사기를 북돋웁니다. 밤이 되면 마을마다 준비한 대등, 연등 등 다양한 등불을 밝혀 장관을 이루며, 지신밟기와 유사한 형태로 마당을 돌며 잡귀를 쫓고 복을 기원하는 행위를 합니다. 이는 놀이가 단순한 경기를 넘어, 마을 전체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정월 대보름 세시풍속의 일환임을 보여줍니다.

공동체의 시위와 환영

각 마을에서 온 기줄 행렬은 농악대와 다양한 깃발(농기, 부락기, 영기)을 앞세워 광장을 돌며 기세를 올립니다. 총패장은 말을 타고 전체를 지휘하며 도착하는 마을을 맞이합니다. 읍내 마을에서는 음식을 장만하여 도착하는 기줄팀들을 극진히 대접하는 등, 환영과 시위가 어우러진 이 과정은 공동체 간의 유대감을 다지면서도 곧 다가올 경쟁에 대한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수천 명의 마을 주민들이 함께 함성을 지르고 노래를 부르는 이 광경 자체가 거대한 집단 연희(集團演戲)입니다.

의례의 절정: 암수줄 결합

마을별로 만들어온 기줄 토막들이 본부에 집결하면, 각 편(부내/말곡)의 전문 기술자들이 이 토막들을 엮어 거대한 암줄과 수줄을 완성합니다. 수백 미터에 달하고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이 거대한 줄의 완성은 경기의 클라이맥스를 향한 준비이자, 그 자체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거대한 줄의 완성

마두(말머리 모양의 줄머리)에서 꼬리(지네 모양의 줄꼬리)까지 이어지는 몸줄은 300m 이상이며, 몸통 둘레는 7~8m, 높이도 3m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입니다. 지역 주민들이 직접 당기는 꼬리줄 역시 굵고 긴 게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거대한 줄의 제작과 완성은 마을 사람들의 집단적인 힘과 기술을 과시하는 동시에, 다가올 경기를 위한 준비를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성희잡담과 상징적 결합

자정이 넘어 새벽 1시경이 되면, 부내 편의 암줄과 말곡 편의 수줄을 결합하는 의례가 이루어집니다. 암줄의 타래와 수줄의 타래를 서로 대고 비녀 장목(공이)이라는 긴 나무 막대(수줄에 속함)를 질러 연결합니다. 이 공이는 크기와 형태 면에서 남근목(男根木)의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며, 암수줄의 결합 과정은 곧 성적 결합을 상징합니다. 이 과정에서는 참가자들 사이에 성희잡담, 욕설, 집단 야유 등이 오고가며 웃음을 유발합니다. 이는 생명 탄생과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적인 의미를 해학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놀이의 제의적 성격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최근에는 이러한 노골적인 표현이 많이 사라져 아쉽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힘과 단결의 겨루기: 본놀이와 뒷놀이

암수줄의 결합이 끝나면 드디어 수천 명의 참가자가 힘을 합쳐 줄을 당기는 본놀이가 시작됩니다.

수천 명의 일체된 움직임

줄머리에 올라선 총패장의 지휘 아래, 수천 명의 놀이꾼들이 게발 모양의 꼬리줄을 잡고 일제히 줄을 당깁니다. 깃발 신호, 북과 징 소리, 그리고 총패장의 구호에 맞춰 수천 명이 일체된 움직임을 보이는 이 장면은 장관을 이룹니다. 술이나 돌을 뿌리거나 횃불을 이용하는 동작 등 다양한 전략과 전술이 동원되어 경기를 더욱 역동적으로 만듭니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힘의 대결이 아니라, 참가자 전원의 강력한 단결력과 집중력을 시험하는 과정입니다.

승리 후의 화합

승패가 결정된 후에는 갈등 해소와 화합을 상징하는 과정이 뒤따릅니다. 비록 기록에 명확한 '뒷놀이' 명칭은 없지만, 다른 줄다리기 민속처럼 승리한 편이 패배한 편을 일으켜 세우고 함께 어울려 춤추고 노래하는 화합의 장이 펼쳐졌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경쟁을 통해 쌓인 긴장을 해소하고, 승패에 관계없이 마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서로를 인정하고 화합을 다짐하는 이 과정은 삼척 기줄다리기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공동체적 가치를 보여줍니다.

삼척 기줄다리기의 민속학적 가치와 현대적 전승

삼척 기줄다리기는 독특한 형태와 역사적 배경, 그리고 다양한 상징 체계를 지닌 한국의 중요한 민속놀이입니다. 오늘날 이 놀이가 지닌 민속학적 가치와 보존의 의미를 살펴봅니다.

지역 특색과 갈등 해소 민속

삼척 기줄다리기는 게줄이라는 명칭, 허목 부사 관련 설화, 부내면과 말곡면의 대립, 그리고 노역 배당이라는 독특한 역사적 기능 등 삼척 지역의 고유한 특성이 강하게 반영된 민속입니다. 또한, 공동 작업 인력 동원과 노역 분담이라는 현실적인 갈등을 놀이의 형식으로 해결하려 했다는 점에서 사회적 기능이 두드러지는 민속으로 평가됩니다.

풍요 기원과 음양 상징

이 놀이에는 풍요 기원과 음양(陰陽) 상징이 깊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이기는 편에 풍년이 든다는 속설, 암줄과 수줄의 성적 결합을 통한 생명력의 기원, 그리고 지역적 특징(해안 vs 산간)과 성별(여성 vs 남성)을 팀의 상징에 연결시킨 것 등은 줄다리기가 가진 보편적인 농경 의례적 성격이 삼척 지역만의 방식으로 변주된 형태입니다. 특히 남근목 공이와 성희잡담은 풍요 기원의 주술적 의미가 시각적, 언어적으로 강렬하게 표현된 부분입니다.

민중 의식의 발현과 집단 연희

삼척 기줄다리기는 대규모 인원이 참여하는 집단 연희이자, 그 속에 참가자들의 민중 의식이 투영된 놀이입니다. 고된 줄 제작과 노역 배당이라는 현실 속에서도 놀이를 통해 신명을 내고(오락성),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즐기며(자율성), 공동체의 일원으로 단결하고(단결력), 초자연적인 힘에 의지하고 기원하는(신앙성) 모습이 복합적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전통 시대 민중들이 삶의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놀이를 통해 공동체를 유지하고 희망을 만들어갔는지를 보여줍니다.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와 보존 과제

삼척 기줄다리기는 이러한 복합적인 민속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6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는 이 놀이가 우리 민족의 역사, 사회, 문화, 신앙 체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임을 국가적으로 공인한 것입니다. 현재 전승 단체를 중심으로 놀이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과거에 비해 규모가 축소되거나 일부 의례(특히 암수줄 결합 과정의 상징성)가 약화되는 등 원형 보존에 대한 과제도 안고 있습니다. 술비통 복원과 <술비통노래> 전승 노력처럼, 놀이의 모든 요소를 충실히 보존하고 현대적인 방식으로 그 가치를 알리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결론적으로 삼척 기줄다리기는 지역의 역사와 환경, 공동체의 갈등과 화합, 그리고 농경 사회의 풍요 기원 신앙이 얽혀 있는 한국 줄다리기 민속의 독특하고 중요한 변이 형태입니다. 민속학자의 시선으로 이 놀이를 깊이 탐구하는 것은 우리 민속이 얼마나 다양하고 역동적인지, 그리고 놀이가 어떻게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공동체의 숨결을 담아왔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사라져가는 이 소중한 무형문화유산이 앞으로도 그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으며 후대에 잘 전승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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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국역 척주지(배재홍 편저, 삼척시립박물관, 2001), 삼척게줄다리기 고찰(장정룡, 강원도 민속연구, 국학자료원, 2002), 삼척지역의 술비통과 줄다리기(이창식, 민속문화의 정체성 연구, 집문당, 2001), 완역 척주집(강원대학교 강원문화연구소, 삼척시, 1997).